▲ 류송자 수필가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음악회 갈래?”, 친구의 음성

“응, 그래.”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무엇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세종문화회관 2층 제일 구석자리. 초대권이니 좌석 타박 할 생각 없이 어두컴컴한 실내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유명세를 타는 여자 아나운서의 사회로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전국 교도소를 돕는 사단법인 기독교 모임이 주최인걸 알았고, 교회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앙인이 아니더래도 교회 음악은 장엄하고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음악회 후반부에 지방교도소의 재소자 합창단이 등장했다. 뜻밖이었다.

시골길 가다가 돌담의 돌 수를 세어 보는,

다리 난간의 수를 세어 보는,

공사장의 트럭 대수를,

지하철에서 노닥거리는 여자들의 팀 수를,

자전거 여행의 긴 행렬의 자전거 대수를,

긴 기차의 화물 칸 수를,

뭐든지 세어보는 버릇이 있어 세어보니 21명이었다. 초록 치마와 하늘색 저고리의 다소 언발란스의 색깔의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촌스럽다고 할까? 일상의 의상 생활에서 잘 이용되지 않는 옷 색깔이었다. 합창 곡목은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위로의 말 한마디> 이 세곡이었다. 합창이 진행되는 동안 청중들의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음악의 초보자일 것이고 음악성이 있는 것도, 세련되지도, 가창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연습, 연습, 연습, 무척 많이 연습했고, 조심스러웠고, 진지했고, 진정성과 온 정성과 성심을 다해 노래 부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어려운 수형(受形)생활에서 음악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 어느 재소자가 긴 수형 생활동안 너무 고통스러워 생(生)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창가 시멘트 틈 사이에 어디서 날아 왔는지 모르는 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과 함께 生에 애착을 느껴 생각을 바꾸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1명이 모여 많은 연습을 하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갈고 닦아질 것이며, 맑아질 것이며, 웃음을 찾을 것이며, 협동심이 생겨날 것이며, 서로 돕고 배려할 것이며, 이기심을 줄일 줄 알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는 아름다움으로, 情이 넘치는 인간성과 인간미를 회복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음악이 사람을 이끌고, 심성을 바로 잡아 줄 것이며 그들의 거칠었던 마음이 순화되고 그들의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사랑으로 치료하고 심성을 개조시킨다는 것을, 치료 음악이 되는 것을 이 합창단을 구성한 지휘자는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세 곡에 불과했지만 몇 달의 시간을 쪼개가면서 연습했을 것이고 연습하는 시간 동안 본인(本人)의 심성(心性)을 다스려 나갔을 것이고, 행복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치유되고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음악을 아는 사람은 공감할 수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비는 내린다. 나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음악을 껴안고 인간성만은 마모되지 않으려 음악에 기대어 살았고 그 음악이 나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들의 수형 생활이 음악과 함께 하고 그 끝에도 음악이 있어 그들의 인생이 행복했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창가의 새싹이 틔어지리라. 그들은 해낸 것이다. 오늘 저녁의 초록색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초록색이었다. 그들의 초록색은 빛나고 아름다웠다. 음악도 수행(修行)이고 구도(求道)라 생각한다. 재소자 합창단의 지휘자 성함은 소개되진 않았지만 퇴장할 때의 우레와 같은 박수에 무대 출입구 앞에서 한번 더 겸손하게 환호에 답하는 그 분에게 진정 축하와 노고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지러운 사회가 정화되는 한 부분을 본 것이다. 200명이 넘는 합창단의 “헨델의 메시아”합창으로 음악회는 끝났다. 누가 말했던가? 프로보다 아마추어가 더 아름답다고, 근래에 보기 드문 감명 깊은 음악회였다. 나는 음악당을 나오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보았다. 음악당 층계를 내려오면서 옆의 친구에게 “우리나라 참 근사한 나라다. 그치?”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는 나를 보고 친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상쾌한 밤이었다.

류송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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