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글로벌스타] 장항준 감독은 꽤나 오래 영화계를 떠나 있었다. 그는 입담 좋은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작품’으로는 눈에 띄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주목을 받았던 <라이터를 켜라>는 오래 전이고 드라마 <싸인>은 아내 김은희의 이름이 더욱 돋보였다. 웃기는 감독, 예능 하는 감독, 감초 연기 잘하는 감독. 정작 그에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름은 붙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장항준 감독은 기존에 선보였던 ‘코미디’의 색을 완전히 집어던졌다. 목을 조여 오는 스릴러로 실로 오랜만에 컴백한 그는 자신의 내공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신경쇠약의 동생 vs 납치당한 형

영화는 새 집으로 이사를 온 두 형제가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하면서 긴장감을 유발한다. 삼수생 진석은 신경쇠약으로 약을 복용한다. 그에게는 모범생에 못하는 거 없는 형 유석이 최고의 자랑이다. 이사 온 첫 날, 밤에 비가 내리고 형제는 산책을 나간다. 돌아오는 길, 형은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동생은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고 기절한다. 19일 만에 형은 돌아오지만 이후 형제의 기억은 묘하게 엇갈린다.

형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동생이 신경쇠약 증세로 헛것을 보는 걸까? 만약 거짓말이라면 모범생인 형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헛것을 본 거라면 그 헛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두 형제의 갈등을 통해 영화는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긴다.

본 거 같으면 어때, 잘 꿰매면 그만이지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아주 신선한 걸’ 보여주기란 힘들다. 대신 기존에 나왔던 좋은 소재, 장면, 감정을 새롭게 엮음으로 익숙하되 신선한 느낌을 준다. <기억의 밤>은 다양한 영화, 소설 등이 생각나는 내용의 연속이다. 허나 하나하나 새로운 옷으로 꿰매는 솜씨가 좋다. 강점은 취하되 단점은 버리니 높은 긴장감이 유지되고 색다른 시도가 없다 보니 흐름이 매끄럽다. 몰입감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감독의 솜씨 역시나 돋보인다. 집이라는 작은 공간, 형제라는 뗄 수 없는 관계, 기억이라는 왜곡과 상실이 쉬운 단어를 차곡차곡 엮어 복잡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쉽게 풀어냈다. 스릴러 장르가 복잡해지는 순간, 관객은 흥미를 잃고 만다. 간단하지만 두 손을 꽉 쥐고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탄생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hot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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