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글로벌스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해가 뜨면 내 밥그릇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답답하기 그지없는 직장에서 저마다의 처세로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하루쯤은 해가 뜨지 않거나 늦게 뜨면 좋으련만 24시간 단 1초도 틀리려 하지 않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이상 거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직장상사로 모셔야 한다. 또 평생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회장님이라는 존재를 때로는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과 회장님이 겪는 단절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이란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러나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족에게 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강기준’은 아내에게 조차 다른 직원과의 스톡옵션의 차이를 솔직히 밝히지 못한다. 회사에서 당한일이 굴욕적일수록 집에 가서 입도 뻥끗하지 않는 것이 남자만의 외로운 자존심이라고 여긴다.

또 다른 가족인 일광그룹의 아버지와 아들 역시 소통하지 못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저 두려운 존재이고 아버지에게 아들은 못미더운 존재이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어도 똑같은 불협화음으로 마주한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반추하지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묵묵히 있어주기를 바란다. 가정에서 조차 위로받지 못하는 현대의 인간소외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강기준이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이직한 직장의 봉투를 이용해 사직서를 등기로 보내는 것으로 일광기업과의 관계를 마무리 짓는다. 사직서는 우체부의 손을 빌려 전달되었다. 그동안 받았던 월급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한 절차였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달콤할 때는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닳아버린 헌 신짝 밑창 보다 얇은 관계의 고리가 끊어졌다. 그는 거상그룹의 봉투를 보냄으로써 다른 회장님의 허수아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돈이 없는 자들은 없는 대로, 돈이 많은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돈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올바르지 못하고 내가 싫은 것인데도 암묵적으로 묵인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것이 합리적 이라고 체념하며…… 소위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비합리적 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든다.

허수아비가 추는 춤은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들의 애환의 몸부림이요,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고자 하는 고달픈 이들의 춤사위다. 사원은 대리, 대리는 과장, 과장은 부장, 부장은 상무, 상무는 전무, 전무는 사장, 사장은 회장, 또 기업은 정치인의 허수아비가 되어 한스러운 날개로 구슬프게 춤을 춘다. 금방이라도 부러져 버릴 것 같은 날개가 애달프게 펄럭이다 꼬꾸라진다. 조금 쉬어가도 좋으련만 살기 위해 힘겹게 다시 날개를 편다. 그냥 소설 속 이야기일 뿐 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편한 진실들이라 부인하고 싶어도 쓴웃음만 새어나온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보아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의 가락에 장단 맞춰 춤을 춘다.

그래도 오늘이 끝이 아니기에 내일을 기약하고 꿈꾼다.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오기를, 그 바람으로 자유로운 춤사위를 이룰 수 있기를!

이승리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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