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문학
[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35화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2년 전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우연히 차가 멈춰 외딴 마을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에게 적대감을 품죠. 이 이방인은 당황한 나머지 그들이 쏘아붙이는 말에 뇌를 거치지 않고 답을 합니다. 그러다 꼬리표가 붙게 되죠. ‘난 자살하기 위해 이 마을에 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잘 대해줍니다. 어차피 자살할 사람이니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보내라는 의미에서였죠. 남자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자살을 꿈꾸는 여인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남자는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지죠. 하지만 여자는 자살을 합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 마을 사람들은 말해요. 대체 언제 자살할 거냐고요. 남자는 애원합니다.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않느냐, 당신들은 내가 죽는 걸 꼭 봐야만 되겠느냐. 마을 사람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살을 암시하듯 작품은 끝을 맺죠. 단막극 <5월의 어느 날>은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뒤흔들 만큼 히트를 쳤습니다. 신인 작가 박민주는 단번에 K본부 월화드라마를 집필하게 되었어요. 분명 <줄리안 포>라는 그대로 베꼈는데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암튼 그 작품 이후 이 작가는 매번 성공을 거두었어요. 참 놀라울 정도로요.

 

-글은 케첩과 같아요. 아무리 쥐어짜도 안 나올 때가 있는가 하면 잘 나올 때는 한꺼번에 흘러내리죠. 지금 제 머릿속에는 27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거요? 이 작품들을 다 쓰기 전에 죽는 거겠죠? 뇌의 시간은 무한한데 인간은 아니잖아요.

 

이 천재작가가 절 불렀을 때 당황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쭉 나열하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어요.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 그렇지 않아?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린 복수를 하고 있는 거라고요. 왜 차 선생님은 이 사람을 끌어들인 걸까요? 이 사람도 김진석에게 당한 걸까요? 가끔 촬영장에 찾아올 때마다 보는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김진석한테 너무 앵겨요. 옆구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겨드랑이에 가슴이 닿게 포옹하죠. 생긴 건 못생겼는데 남자 스텝들 말로는 은근 색기가 있답니다. 저 색기로 김진석을 꼬시기라도 할 작정인가요? 그거로 복수하려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회는 간장, 쌈장, 된장에 찍어먹는 거지 기름장에 찍어먹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나무젓가락으로 손등을 찍는 거 있죠. 진짜 어이없지 않아요?

 

귀여운 매니저님은 활짝 웃으며 떠듭니다. 작은 키에 바가지 머리를 한 게 어린아이 같습니다. 주절주절 떠드는 것도요. 아이의 머리에는 필터 기능이 없습니다. 어제 보고 들은 걸 보는 사람마다 이야기하죠. 자기 부모님 잠자리까지도. 조금만 호응해 주면 신이 나서 내뱉습니다.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 시계를 봅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매니저는 악수를 청하고 윙크를 날립니다.

 

-저도 다연 씨 회사에서 일하고 싶네요. 혹시 자리 나면 알려주세요.

 

아쉽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네요.

 

*

 

-헤이, 큐티 보이, 눈 좀 떠봐.

 

오늘 아침에 전화를 받았다. 다연 씨를 만났고 드라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스타에 대한 일도. 우리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나눴고 교감했다. 다연 씨가 스케줄 문제로 먼저 일어났고 차로 향했다. 시동을 켜기 전 누군가 입을 틀어막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눈을 떠 보니 차 선생님 매니저가 서 있다. 불이라고는 전등불 하나고 사방에 박스에 농기구가 있는 게 창고 같다. 손에 드릴을 든 게 저걸로 날 협박할 모양인가 보다. 이럴 땐 미리 선수를 치는 게 상책이다.

 

-뭐든 말 할게요. 그러니까 고문만 하지 말아줘요.

-김진석한테 연락해서 유인해 줄 수 있어?

-그야 당연하죠. 그러니까 제 손톱 하나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문자를 보내니 전화가 온다. 병신 같은 새끼. 의심 한 번 더럽게 많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빨리 오라고 짜증을 내니 죽여 버린다고 답한다. 씨발, 내가 죽게 생겼다고. 차 선생님 매니저는 밖으로 나갔다. 촬영 장소라고 속인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김진석, 보나마나 죽겠지? 녀석이 눈치가 있어 경찰과 함께 오진 않았을까? 그럼 매니저가 날 죽여 버릴 텐데. 녀석의 입으로 말했다. 스타가 떨어지지 않으면 매니저가 땅에 묻힌다고. 손발이 묶인 의자를 덜컹덜컹 움직인다. 벽에 부딪혀 갈퀴를 넘어뜨린다. 나도 뒤로 발랑 넘어진다. 제길, 머리부터 떨어져 깨질 것만 같다. 몸을 옆으로 돌려 갈퀴에 팔 한 쪽을 비빈다. 테이프가 풀렸다.

 

창고 밖은 어둡기만 하다. 제길, 왜 하필 숲속인 거야. 핸드폰도 없이 어떻게 빠져나가야 될지 막막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만 해도 문학 소년이었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 <대위의 딸> 등 어려운 러시아 고전명작을 읽었다. 동네 어른들은 크게 될 녀석이라며 비행기를 태웠다. 엄마는 이제 방을 혼자 쓰라며 TV를 넣어주었다. 밤에 무서우면 엄마 방으로 오는 대신 TV를 켜라고 말했다. 집에는 케이블이 없었다. 새벽 시간이면 하얀 화면의 정규방송 대신 영화채널을 틀어 놨다. 3개뿐인 영화채널을 돌아가며 보았다. 그 순간 마음에는 배우에 대한 꿈이 커져만 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현실을 자각했다. 키는 작고 얼굴은 볼품없고 발음은 엉망진창이고. 연극부에서는 배우 대신 연출을 하다 연출도 재능이 없다며 조명 담당을 시켰다. 학년이 올라가면 배우를 시켜주겠지 라는 기대감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백수가 되었다. 재수는 사치라 여겼다. 공부에 재능이 없다며 연예계에 뛰어들겠다 말했다. 왜 하필 그 시작이 김진석의 매니저였을까.

 

그 망할 새끼한테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관계라는 것이다. 김진석은 관계란 건 꼭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하였다.

 

-인간이란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하는 거 아니냐. 관계란 게 그래. 서로 이어지면 다 관계야. 싫은 것도, 속이는 것도, 심지어 증오하는 것도 관계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꼭 좋을 필요는 없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면 나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쨌거나 관계니까.

 

나름 노력했다. 아무리 개 같아도 내가 담당 매니저니까. 운전해주고 짐 옮겨주고 밥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니까 잘 지내야 된다고. 이제 필요 없다. 만약 녀석이 살아온다면 증오할 것이다. 미워하고 싫어할 것이다. 죽어버린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그리고 차 선생님 매니저가 도망친다면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관계란 건 그런 거니까. 국회에서는 물어 뜯어버릴 거처럼 달려들다가도 식당에서는 서로 안부를 묻는 국회의원처럼 철판 200장은 기본인 거니까.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멀리 불빛이 보인다. 따라 가보니 손전등이 비치고 있다. 그가 서 있다. 우리 스타님, 악독하고 징그러운 퇴물님. 언제나 그랬듯 재수가 없네요. 어쩜 저리 멀쩡한 거지? 다리는 의지와는 달리 떨림을 반복한다.

 

김준모 기자  press@lunarglobalstar.com

<저작권자 © 루나글로벌스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준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