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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36화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그의 미소, 손등에 올라온 핏줄, 붉게 물든 앞니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꿈이라 여겼다. 촬영이 없을 때면 예전 버릇처럼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니까. 전날 3시간 밖에 잠을 못 자서 기절하듯 잠들었으니까 꿈속에 있는 거라고 여겼다. 차 선생님은 집 앞으로 차를 보낼 테니 타고 오라고 하셨다. 시계를 보니 새벽이었고 다연 언니한테 연락하긴 늦었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장소는 예상 외였다. 산이었고 차 선생님과 경찰 두 사람이 있었다. 구급차에는 두 사람이 실려 갔다. 한 사람은 원섭 씨였고 다른 한 사람은 차 선생님 매니저였다.

 

-동수가 진석이를 유인했다고 하더구나. 진석이를 공격했는데 원섭이가 대신 맞았다나 봐. 원섭이가 내게 전화했어. 아는 경찰과 119를 불러달라고. 언론에 이 이야기가 나오면 진석이가 곤란해질 거라면서 걱정하면서 말이야. 숨을 헐떡이면서도 참 침착하게 말하더구나.

-근데 김진석은요? 어디 있는 거예요? 설마........ 설마 죽은 거예요?

 

차 선생님은 턱으로 자기 뒤편을 가리켰다. 손전등 불빛에 비춰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뭘 쳐 웃고 있는 거야. 넌 죽을 뻔했다고! 뺨을 갈기고 싶었다. 그런데 손이 떨렸다. 무섭다. 저 인간은 대체 뭘까. 내가 사랑하는 그 김진석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남자가 맞는 걸까. 그와 눈이 마주친다.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섰을 때처럼 신경이 곤두선다.

 

-너도 구경 왔니? 미안한데 난 이딴 잡것한테 죽지 않아. 너랑 차 선생님이 꾸미는 계획이 뭔지 몰라도, 잘 봐둬. 늙은 할망구와 성괴의 콤비 플레이로 끝장날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

 

그는 뒤돌아서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난 매니저 새끼를 쳐 죽일 테니까 넌 할 일 없으면 공범자나 찾아 봐. 갈아 마셔 줄 테니까.

 

차 선생님께 말했다. 이 복수, 그만두자고. 다연 언니는 눈이 동그래져 날 바라보았다.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김진석은 괴물이다. 우리가 이길 수 없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인맥을 동원해서 우릴 밟아버릴 것이다. 뒤에서 무슨 덫을 쳐 놨을지 모른다. 차 선생님은 오래 연예계를 떠나 있지 않았나. 더군다나 정신병원까지 갔다 온 사람을 누가 도와주겠는가. 팔짱을 끼고 미간이 찌푸려진 차 선생님께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했다.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물음표를 잡아당긴 것이다.

 

-김진석을 저렇게 만든 건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선생님이 제게 김진석을 용서하라고 강요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강요했니? 웃긴 소리 하지 마렴. 용서를 결정한 건 너였어! 네가 그 애를 사랑해서 그런 거잖니?

-아뇨, 분명 선생님이 유도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제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전 그 녀석을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그때 제가 녀석을 신고했다면 선생님께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겠죠. 솔직히 전 선생님께서 한 말씀도 의심이 가요. 김진석이 선생님께 큰 상처를 남겼다는 말. 그 상처가 무언지 제게 말해주지 않았죠. 그저 제 복수심을 이용해 공감을 살 만한 이야기만 해 이 계획에 끌어들였어요. 전 복수심으로 활력을 얻었고 증오로 일어섰죠. 이 모든 게 선생님 계획이죠, 그렇죠?

-다예야, 진정 좀 해! 선생님 앞에서 뭐하는......

 

차 선생님은 손을 들어 다연 언니의 말을 막는다.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예영’이랑 김진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김진석을 만날 때면 그 이름이 등장하느냐고요. 선생님 여동생이랑 그 녀석 사이에 뭐가 있었기에 김진석만 만나면 그 이름이 등장하느냐고요!

 

선생님은 팔짱을 풀고 팔걸이를 움켜쥔다. 다연 언니는 포기한 듯 자리에 앉아 고개를 흔든다.

 

-저 선생님 좋아해요. 신인 때 저 챙겨줬던 분 선생님 밖에 없었어요. 제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것도 선생님 덕분이고요. 선생님을 좋아하는 만큼 김진석도 좋아해요.

-야, 양다예!

 

다연 언니는 고함을 지른다. 차 선생님이 손을 들어 말을 막자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를 향한다. 문을 닫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선생님의 입모양이 말한다. 계속 지껄여 보라고.

 

-알고 싶어요. 선생님이 왜 김진석을 싫어하는지. 둘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선생님께서 말해주지 않는다면 선생님을 미워할 거예요. 선생님은 제게 상처를 줬잖아요. 그리고 김진석을 괴물로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그 괴물한테 선생님이 상처를 입은 거잖아요. 그 상처를 말해줘요. 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어요.

 

차 선생님은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가락을 치웠다. 이미 눈물 한 가락이 턱까지 내려왔다.

 

-그래, 다예 네 말이 맞다. 황소개구리 알을 품고 방생해 포식자로 만든 건 나야. 그래, 나지. 내가 다 잘못했다. 그 잘못으로 가장 소중한 걸 잃고 말았지. 그래서 내 손으로 돌려놔야 해. 내가 저지른 과오 때문에 죽은 예영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되돌려 놔야 해.

 

선생님은 침을 삼킨다.

 

-예영이는, 예영이는 여동생이 아니야. 그 애는 내 딸이야.

 

*

 

인생은 세 가지로 이뤄진다고 한다. 시도, 성공, 실패. 마치 게임처럼. 엄마에게 있어 나는 실패다. 결혼은 예정에 없었고 임신은 더더욱 없었다. 피임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고 술에 취해 맺은 어설픈 관계였다. 엄마는 몇 번이고 나를 지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빠는 설득을 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포장하고 다가오지 않은 슬픔을 극대화시켰다. 엄마는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모르게 몰래. 양가 부모들만 참석한 조그마한 혼례 이후 난 버려지듯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다시 동전을 찾았단다. 게임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동전을. 그러니까 난 엄마한테 ‘GAME OVER’와 같은 존재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둘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고 엄마는 툭하면 성질을 냈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뒷머리를 긁으며 머쓱해했다. 엄마가 주연 배우로 입지를 굳혀가는 반면 아빠는 단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억 속 아빠는 아주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턱 선이 날렵했고 눈빛이 강렬했으며 마른 몸에 잔근육이 가득했다. 엄마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말했다. 너무 빨리 태어났다고. 그래서였을까. 아빠는 세상도 일찍 떠났다. 방송국에서는 사고라고 말했다. 절벽 근처를 걸어 다니다 발을 헛디뎠다고. 엄마는 단역들끼리 장난을 치다 밀려 떨어졌을 거라고 말했다. 그 시절에는 유행처럼 그런 장난을 쳤고 운이 없으면 떨어졌으니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류상 타인이었고 난 외할머니가 낳은 늦둥이로 호적에 이름을 올렸으니까. 드라마가 끝나고 일주일 동안 엄마는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 아빠의 사진을 앞에 두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사랑을 했는데 왜 행복하지 못한 걸까. 동화 속 왕자님과 공주님의 이야기는 다 거짓말처럼 여겨졌다.

 

엄마는 엄마대로 바빴고 나는 나대로 바빴다. 뭐가 그리 바빴냐고? 놀이공원, 수영장, 오락실, 야구장, 축구장, 스키장, 동물원, 여기에 컴퓨터, 피아노, 태권도, 수영, 바둑, 검도, 수학, 영어, 국어, 과학 학원까지. 학창시절 하루도 아침에 일어나 안 씻어본 적이 없다. 바쁘면 생각이란 게 생기지 않는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이 감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사랑도 그런 식으로 지나갔을지 모른다. 엄마를 여유롭게 만든 건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했을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담임의 강요로 학교를 향했고 내 점수가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대해 들었다. 담임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렸다.

 

-애가 취미도 특기도 없답니다. 뭐,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꿈이 없답니다.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데 제가 어떻게 이 애를 이끌어 가겠어요?

 

엄마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줄였다. 어차피 예능감이 없다며 인터뷰나 예능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자리에 앉기 위해 주연 자리를 포기했다. 엄마는 드라마에서도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남산이나 경복궁, 춘천 닭갈비, 안동 하회마을, 부산 해운대, 전주비빔밥, 제주도 둘레길 등등 엄마는 국내에 소문난 장소라면 어디든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내게서 무언가를 이끌어 내주시려는 듯 말을 많이 했다. 엄마는 좋은 발성을 지녔지만 달변가는 아니었다. 기억에 남는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앞길을 정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순수문학 작가. 한 마디로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집에서 놀면서 글이나 쓰겠다는 말이었다. 엄마는 허락해주었다.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우리 딸이 행복하면 엄마는 그걸로 만족해.

김준모 기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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