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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우리 스타의 범죄 37화

[루나글로벌스타 김준모 기자]

백수 생활은 연애와 같다고 한다. 피로와 외로움은 순간이다. 이 순간을 위한 선택치고는 대가가 크다. 두 달 정도는 즐거웠다. 만화책을 커다란 비닐봉지를 가득 채울 만큼 빌려와 밤새도록 보고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 5편을 보는 날들이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글자 하나 쓰지 못하는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있자니 경멸과 멸시가 이마에 적혀 있는 기분이었다. 외로움을 달래는 사랑의 향기가 자유와 여유를 뒤덮지 못하듯 유흥의 쾌락도 자존감의 깊이를 채우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이런 C급 영화의 시나리오는 나 혼자 감상했다. 엄마가 일일 드라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회당 천만 원을 받는 유명작가가 엄마한테 러브콜을 했고 엄마는 OK 싸인을 보냈다. 엄마의 노력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까지였나 보다. 정말 변명인 걸 몰랐을까.

 

호텔에서 잠을 잘 때면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말 뜻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렁뱅이 외삼촌이 술에 잔뜩 취해 집에 찾아온 적이 있다. 엄마는 촬영 때문에 집에 없었고 할머니는 저녁을 차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위기의 주부들>을 보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로 깜짝 놀랐다. 더 깜짝 놀랄 일은 문을 열어준 이후에 펼쳐졌다.

 

-네 엄마가 얼마나 개 좆 같은 년인지 모르지? 내가 말해줄까? 저 년, 매일 밤 기도했어. 네가 떨어지길 바라며 기도했다고! 차가운 물을 담은 수조에 누워 있기도 하고 일부러 계단에서 구르기도 했어. 저 년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년이야. 딸년도 사랑하지 않는 년이라고.

 

배신감이 들진 않았다. 그저 놀랐다. 엄마는 참 독한 여자구나. 성공을 위해서라면 핏덩이도 포기할 사람이구나. 코를 골며 소파에 드러누운 외삼촌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엄마는 내가 아닌 자신을 걱정해서 시간을 보낸 게 아닐까. 내가 엇나가서 큰 사고라도 치면 자신의 배우 인생이 끝날 까봐 그게 염려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슬퍼졌다. 최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딸이 이렇게 형편없는 존재인 게.

 

그 사람을 만난 건 <이웃집 여자들>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난 그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그 남자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엄마는 간만에 같이 저녁을 먹자며 승조 오빠 레스토랑으로 날 불렀다. 레스토랑 안쪽에는 연예인들만 따로 이용하는 룸이 있다. 나는 3번 룸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승조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머, 예영이 첫 작품은 언제 나오니? 나오면 오빠가 홍보 엄~~~청 해줄게. 우리 예영이 귀여워 죽겠어!

 

첫 작품이요? 하하, 나올 리가 있나요. 재능이란 게 1도 없는데. 승조 오빠는 이따 엄청난 미남을 만나게 될 거라며 들떠 있었다.

 

-예영이 너 진짜 놀랄 걸? 내가 최근에 본 신인 중에 얘가 진짜 제일 잘 생겼어. 개인적으로 연예계 미남 1위 뽑으라면 내 1픽이 얘야. 보고 반하지 마. 내가 찍었으니까!

 

누굴까. 남자 미모에 까탈스러운 승조 오빠가 1위로 뽑은 사람이. 그 사람이 엄마랑 같이 온다고? 엄마한테 애인이 생긴 걸까. 혹시 새 아빠? 아니, 그렇다면 승조 오빠가 저렇게 반응할 리가 없겠지.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승조 오빠가 깨방정을 떠는 소리, 엄마의 환한 웃음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 엄마는 두 팔을 벌려 날 안았다. 그리고 옆의 남자를 소개했다.

 

-예영아, 인사하렴. 내 아들이란다.

-안녕하세요, 김진석이라고 합니다.

 

사진 속 그리고 기억 속에 있던 그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김준모 기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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