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글로벌스타 - 수필가 '류송자'의 문학감상 2] 붉은보석 (2014年作)

중학교 1학년. 나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외가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다닌다기보다 매일 엄마 생각, 아버지가 보고 싶고, 동생들이 보고 싶고 집생각이 나서
공부는 뒷전이었다. 밤에 잠들 때 울기도 곧잘 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챙기고 옷을 넣고 내일 아침 첫차로 떠날 준비를 다 해 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 날은 외할아버지 제사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외가 친척들이 모여 분주했지만 내 관심 밖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제사 지낸 후 떡, 과일, 생선, 고기, 마른 오징어에 정신이 팔려 군침을 삼키면서 제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그 날은 집에 갈 생각으로 꽉 찬 마음뿐이었다.

7시 첫 차를 타려고 생각하고 잠이 든 탓인지 5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식구들의 세숫물을 데우려고 가마솥 아궁에 불을 지피시던 외아지매가 벌써 일어나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노?”
“첫 차 탈려고요.”
“날씨 찬데 국물이라도 먹고 가거라”
“괜찮아요.”

나는 꽁지에 불붙은 새처럼 잽싸게 집을 나섰다. 버스정류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그 때는 내의가 부실한 시절이라 이른 초겨울 시골 계시는 어머니가 보드라운 천에 솜을 놓아 만든 속옷을 아버지가 어린 딸을 보러 오시면서 주고 가셨다.
“엄마가 만든 건데 추운 겨울에 꼭 입고 다녀라.”하시면서, 그 보드랍고 따뜻한 속옷을 껴안고
얼굴을 묻고 엄마 생각에 울기도 했다. 마음마저 차가워진 집 떠난 어린 마음을 그 속옷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 속옷을 챙겨 입고 정류장으로 가면서 어둡고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그 따뜻한 속옷이 엄마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서 의지가 됐다.
부지런히 걸어서 첫 차를 탔다. 뒷자리가 남아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차가 출발하기만 기다렸다. 속으로 빨리 떠났으면 하고 집 생각에 잠겨 있는데 차 출입구에서 송자야! 송자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하얀 명주 수건을 머리에 쓴 할머니가 “휴우” 하시면서 겨우 차에
오르시더니 두리번거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놀라서 얼른 일어나면서 “외아지매”하고 소리쳤다. 여기 오실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거 받아라! 아침을 안먹여 보내서 이거라도 가지고 왔다.” 하시면서 숨찬 목소리로 손수건에 싸인 걸 풀어서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두 손 모아서 손 위에 대추, 밤, 떡을 풀어 놓으시고는,
“추운데 밤부터 잘 씹어 먹고 떡은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그리고 차에서 내려 가셨다.
나는 손에서 떡을 쥔 채 따라 내려가서 “외아지매, 추운데 왜 여기까지 오셨니껴?”
“괜찮아, 조심해서 가거라.” 하시고는 바람에 명주 수건이 등 뒤로 날리는 모습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칠순을 훨씬 넘긴 노인이시다. 두 손안에 가득히 든 대추, 밤, 떡을 든 채 버스에 올라 내 자리에 앉자 차는 출발했다. 외아지매가 차 시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숨차게 허둥대며 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두 손 안에 든 음식을 내려다보자마자 대추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추를 입 안에 넣고 씹자 그 단맛이 외아지매의 마음 같았다. 반은 먹고 반은 공책 한 장 찢어서 잘 싸서 가방에 넣었다. 몇 시간 지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날아갈 듯 집에 들어갔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남은 대추, 밤, 떡을 엄마 앞에 내놓으면서 아침에 있던 일을 들려 드렸다. 엄마는 “큰 외아지매가 애기를 못 낳아서 작은 외아지매를 들이셨는데 두 분이 한 집에 사시면서 다툼 한 번 없이 잘 지내시는 분이시란다.

작은 외아지매가 참 인정스럽고 심지가 깊은 분이지, 어제가 외할아버지 제삿날이 맞구나.” 하셨다.

“노천명의 詩「고별처럼」처럼 개 짖는 마을 돌아 닭이 새벽을 알리는 촌가(村家) 돌아” 너무나 긴 시간이 흘러 먼 먼 옛 이야기지만 나는 대추가게를 지나면 꼭 대추를 산다.

그 대추를 씹으면서 머리에 명주 수건을 찬바람에 날리시며 가시던 뒷모습. 쌍꺼풀눈. 얼굴에 있던 검버섯숫자와 크기까지도 기억해내면서 항상 추운 새벽에 일어나셔서 가마솥에 식구들 세숫물을 데우시는 모습, 언제나 인정스러운 외아지매의 마음 같은 대추의 향기로 외아지매의 깊은 정을 음미 한다.

보고 싶고 그립다. 어느 땐 내 옆구리를 툭 치면서 슬그머니 내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주셨다.
어린 나이에 집 떠나 있는 것이 안쓰러웠으리라.

그 때 그 추운 겨울 새벽. 거기까지 오셔서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주시던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글썽댄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추를 참 좋아한다. 내 마음속 깊이 박힌 붉은 보석. 대추. 따뜻하다. 나도 누구엔가 이 따뜻한 보석 같은 마음을 열심히 심어 주고 싶다.

- 류송자 (1944~)

* 1944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1년, 문학미디어 봄호를 통해 수필로 등단한 이후 꾸준한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다. 

* 루나글로벌스타는 수필가 '류송자'님의 수필을 2017년 5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류송자 수필가  star1daily@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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