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글로벌스타 유현수]

(사진 출처 = 판다그램)

2017년 대한민국 걸그룹계에 새로운 파란이 일어났다. 안 그래도 메탈 음악의 불모지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메탈 걸그룹’을 시도한 팀이 등장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이 팀은 당연하게도 ‘드림캐쳐(Dreamcatcher)'다.

드림캐쳐의 모습은 상당히 색다르다. 음산한 의상과 과격한 안무. 그 위에 입혀지는 재빠른 기타 리프는 우리들의 심장 박동 수를 1분에 120번도 더 뛰게 만든다. 메탈의 불모지 대한민국.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걸그룹. 이 둘을 합쳤더니 꽤나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음수(-)와 음수(-)를 곱하니 양수(+)가 되는 창조경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드림캐쳐는 ‘메탈 걸그룹의 성공’을 준수하게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메탈 걸그룹’이라는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앞전에 또 다른 메탈 걸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드림캐쳐와는 달리 상당히 본격적이다. 드림캐쳐가 메탈‘풍’의 대중적인 음악을 보여주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4인조 걸그룹 ‘프리츠(Pritz)'다.

(사진 출처 = 판다그램)

프리츠는 하나, 슈아, 유나, 아리로 이루어진 4인조 걸그룹이다. 2006년 가요계를 충격으로 내몰았던 ‘키로츠 - 신기한 개구리 케이크’를 프로듀싱 했던 김이준 대표가 만든 걸그룹이다. 프리츠에게도 키로츠 특유의 해괴한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 중 하나는 예명을 짓는 방식인데, 예를 들어 프리츠의 ‘하나’ 같은 경우에는 ‘하지메마시떼 나마스떼’의 약자로 만들어졌다. 일본어 “처음 뵙겠습니다”와 인도 인사말 “안녕하세요”를 합친 것이다. 다른 멤버 슈아, 유나, 아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다른 공통점 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이라면 단연 가사다. “예뻐지려면 개구리로 케이크를 만들어 먹어야한다”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키로츠의 난해한 노래 가사. 이 혼돈의 카오스를 프리츠가 그대로 강탈했다. 그들의 가사를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뇌가 상당히 초라하다. 프리츠가 ‘인류최대난제 ~오에오에~’를 부른 것은, 진짜로 우리들에게 인류최대난제를 준 것과 다름없다.

다만 키로츠의 노래가 동요와 같다면, 프리츠는 앞서 말 했듯이 메탈이다. 다행히 메탈이랍시고 스크리밍(Screaming, 비명을 내지르는 창법)이나 그로울링(Growling, 낮은 톤으로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창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콘셉트가 콘셉트다 보니, 이 쯤 되면 이들이 살아가는 차원이 다른 것인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 판다그램)

사실 국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프리츠보다 앞서 메탈 걸그룹이라는 장르를 시도한 일본의 ‘베이비메탈(ベビーメタル)’이라는 3인조 걸그룹이 있다. 드림캐쳐는 이 걸그룹의 콘셉트를 벤치마킹 했다고 밝혔으며, 프리츠도 분명히 이를 참고 했을 가능성이 많다. 의상 등에서 일본 아이돌 느낌이 나면 좋지 못 한 소리를 듣는 분위기 속에서(걸그룹 ‘칠학년일반’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일본 아이돌을 모델 삼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하지만 드림캐쳐도 프리츠도 그렇고 “일본 아이돌을 따라했다”는 이유로는 욕을 먹지 않는다. 왜? 각자 팀 속에 내재되어 있는 분위기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3팀 모두 무대의 구성, 곡의 분위기 등이 크게 겹치는 부분이 없다. 드림캐쳐가 신흥 메탈 걸그룹파라면, 프리츠는 중도 메탈파에 가깝다. 그만큼 드림캐쳐는 메탈이라는 카오스 속에 걸그룹이라는 점을 부각시켰고, 프리츠는 걸그룹이되 최대한 메탈을 살리려 노력을 했다.

(사진 출처 = 판다그램)

그렇기 때문에 프리츠의 음악은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다. 말이 메탈 음악이지, 강렬한 비트와는 달리 노래에 대해 상당히 붕 뜨는 보컬로 인하여 듣는 귀가 썩 편하지는 않았다. 목소리와 배경음악이 서로 절교를 선언한 것이다. mr은 상당히 음산하고 빠른 와중에 가벼운 여자의 음성이 그 위를 배회하고 있다. 매력 어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학예회 노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 자체가 상당히 어린 아이 같다.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고스로리(‘고딕패션’과 ‘로리타’의 합성어) 복장을 입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기도 하는데, 여기에 추임새 가사까지 자주 사용을 하니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 모든 게 뒤엉켜 다소 급이 낮은 퀄리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안무에서 모든 것을 승부 보는 타입도 아니다. 노래에서 감점 요인을 안고 갔다면 다른 부분에서 가산점을 얻어야 할 텐데. 엎친 곳에 일부러 더 겹치고 있다. 이미 그 강을 건너버린 노래에 의해서인지 춤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메탈이라는 콘셉트를 정했다면 아예 안무를 하드코어하게 가거나 해야 할 텐데, 걸그룹이라는 것을 살리려했는지 춤이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어렵다 하는 동작은 전혀 없지만 노래의 분위기에 맞추느라 애써 힘든 동작을 억지로 끼워 넣고 있다. 구멍이 맞지 않는 자물쇠에 열쇠를 애써 넣어보고 있는 행위다.

이 경향은 첫 싱글 ‘인류최대난제 ~오에오에~’에서 정점을 찍는다. 여기서 패배 요인을 자각했는지 두 번째 싱글 ‘솔아 솔아’에서는 그나마 좀 나아졌다. 애매했던 모든 요소를 지웠다. 노래를 아예 음산한 분위기로 바꾸었다. 분위기가 명확해지니 안무도 그에 맞춰 음침하게 정립이 되었다. 조금 부드럽지만 동시에 과격한 안무의 어정쩡함은 오버드라이브 기타 리프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프리츠의 색깔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프리츠의 눈이 뜨기 시작한 곡. ‘Crazy Cowboy'. 샤우론의 눈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아예 디스토션(Distortion) 기타로 메탈의 느낌을 가중시켰으며, mr로 그로울링 또한 첨가하였다. 메탈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본격적으로 현실화한 곡이다. 당장에 1세대 데스메탈 밴드 Cannibal Corps(카니발 콥스)가 연주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반주. 그 속에서 4명의 곡선이 춤을 추고 있다. 혼돈과 공존 그 어딘가에서 우리들을 방황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 판다그램)

이렇듯 프리츠는 메탈과 걸그룹. 마치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조합을 어찌어찌 잘 융합해냈다. 그 속에서 본인들의 색깔을 찾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처참한 실패다. 이야기의 기승전결 모두 암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중간 중간 기쁜 내용이 있을 지언정 결국은 비극이었다.

프리츠를 햄릿과 대등한 비극으로 몰고 간 사건은 여럿 있다. 그 중 가장 컸던 것은 아마 하켄크로이츠 논란이 아니었을까. 프리츠는 무대의상으로 나치가 연상되는 완장을 차고 나온 적이 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서 기사로 다루며 국제적인 망신을 준 적이 있다.

이것 외에도 로리타가 연상되는 의상과 보컬, 이해하기 힘든 노래 내용,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메탈 장르. 이 3가지가 한 곳에 어우러져 상상 그 이상의 부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1년 남짓한 활동 기간 동안 3장의 싱글 앨범과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매우 극소수 마니아층만을 형성할 뿐이었다.

(사진 출처 = 판다그램)

한국 메탈 걸그룹의 시작점을 끊은 프리츠.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프리츠는 정말 반밖에 가지 못 했다. 이렇게 남들이 하지 않는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은 상당한 의의가 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참패일 뿐이었다.

프리츠가 닦다가 중도 포기한 이 길을 이제 드림캐쳐가 이어간다. 다행히 드림캐쳐는 메탈과 걸그룹을 뭉쳐놓으면서도 대중성 또한 포기하지 않아 반응이 상당히 좋다.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드림캐쳐가 일본의 베이비메탈만 참고한 것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만약 프리츠를 벤치마킹 했었다면 혼돈의 폭풍이 우리들을 삼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았어도, 이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상당하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도전적인 걸그룹이 나올 수 있다는 점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걸그룹만 나온다면 대중들은 쉽게 질릴 것이다. 이 때 난생 처음 보는 콘셉트의 걸그룹이 나온다면. 이는 겨울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공기전환이 된다.

비록 메탈 불모지인 지역적 한계. 걸그룹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가요계. 국가적 망신만을 남긴 노이즈 마케팅. 웅장한 비트와는 너무 상반된 목소리. 그 외 문제점을 프리츠는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들이 시도한 혁명적인 콘셉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도전적이고 소외되었던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유현수  waldeinsamkeit@naver.com

<저작권자 © 루나글로벌스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