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송자 수필가

별 좋은 봄날.

“액씨!” 올케 언니도 반가 출신이라 우리집으로 시집온 지 한참 지났지만 시누이에게 좋은 호칭으로 불러준다. “수저 놓았으면 내방으로 건너와 보게.” 점심을 끝내려든 참인데 올케 언니가 불렀다. 올케 언니의 방으로 들어간 나에게 “앉게!” 하면서 자리를 권했다. 의아하게 앉은 내 앞에 한지에 싸인 자그마한 두루마리 2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게 아버지가 포장한 물건이라는 걸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끈이 귀한 시절이라 아버지는 늘 한지를 가늘게 썰어 칼로 정성드려 짤라서 두 손가락으로 잘꼬아 끈으로 쓰셨다.

“이거 받게.” 머뭇거리는 나에게 “어머님이 돌아 가시기전 자네 결혼때 주라고 나에게 맡기신 걸세. 풀어보게.” 나는 천천히 두루마리를 풀었다. 하나는 무명저고리 한감이고 하나는 세수고운 모시한복 한 벌 감이었다. 나는 숨이 탁 막혔다. 오래동안 자리에 누워 기동이 불편하셨는데 이런 것 까지 마련해 놓으시다니, 나는 대강 접어 가슴에 안고 내 방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결혼을 닷새앞둔 날이었다. 그날 밤이 되자 달이 중천에 떠 밝은 밤이었다. 어머니와 같이 보던 달빛의 그 신작로는 여전히 하얗게 빛났다. 내 방 창문에 기대어 달이 기울 때 까지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몸이 쇠약하셔서 부축해야 걸으셨다. 달이 환한 여름밤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뚝방으로 나갔다. 풀섶에 앉으시면서 “달이 참 밝구나.” 하시면서 “이놈은 어디에 있는지?” 하시면서 올케언니와 작은 언니가 잘 손질해준 모시치마 적삼을 입으셔도 속이 답답하다고 옷섶을 열어 놓으셨다. 그런 날 밤이면 신작로는 달빛을 받아 박꽃처럼 하얗게 뻗어 있었다.

우리는 여덟 남매였다. 하회 고향을 떠나 아버지 직장 따라 청송 벽지에서 살았다. 어머니의 선각자적인 안목이 있어 할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디친 큰언니를 제외하고 학교를 많이 시키셨다.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대구에 나가서 공부하고 2000평 밭을 혼자 경작하셨다. 해질 무렵 어머니가 늦으시면 우린 강 언덕에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멀리서 어머니가 보여도 우린 금방 알아 차렸다. 치마가 발에 채인다고 치마끈을 허리춤에 꽂으시고 한손에는 호미와 채소를 담은 바구니를 이고 오셨다. 머리에는 언제나 검불과 흙이 묻어 있었다. 지금도 보이는 듯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머니의 고된 생활이었지만 맏이인 큰오빠에게 희망과 기대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내 걸으셨다.

방학때 오빠들이 오는 날이면 잔치집 같았다. 나는 우리 오빠 온다고 동네에 자랑을 하고 돌아 다녔다. 큰 오빠는 대구 대학에 다녔고 작은 오빠는 대구 농고를 다닐 때 였다. 그리고 6, 25 전쟁이 일어났다. 어머니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큰 오빠는 멀리 사라졌다. 큰 오빠는 그림을 잘 그리셨다. 사랑방 네벽에 걸려있는 그림만 남긴 채,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식구들은 소달구지에 짐을 실고 보광사라는 절로 피난을 갔고, 방에 쌀가마니를 천장에 닿도록 쌓아서 작은오빠와 형부가 숨기도 했다. 낮에 우리 둘이 피신해 있는 방공호 속에서 이상한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모습은 변해갔다. 오빠의 소식을 기다리다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점집을 찾아 다니셨다. 어느날은 물에 흠뻑 젖어 들어오시면서 강을 건너가다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가까운데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져 죽을뻔 했다고 하셨고 어느날은 점쟁이 찾으려 산넘어 이웃동네 가다가 널부려져 있는 시체와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물달라고 애걸하는 인민군을 만나 무서웠다고 하기도 하셨다. 어느 때는 공습때 풀속에 숨다가 뱀이 등에 떨어져 “지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도치골이라는 산넘어 점쟁이 집에 여러번 따라 간일도 있는데 꼬불꼬불 산길이 기억난다. 지금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밤 12시가 되면 10분정도 되는 동네 우물에 물을 길러와 밤마다 치성을 드렸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는 회수가 잦아지자 작은 언니가 대신 물을 길으려 갔다. 작은언니는 무섭다고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가 초등학교 1학년. 우리 오빠는 왜 안올까? 그 생각을 했고 중천에 떠 있는 달은 유난히 차가와 보였다. 달빛 받아 출렁거리는 우물물은 무서웠다. 세월이 가고 우리 남매들은 자라고 어머니는 늘 몸져 누우셨다. 누가 멀리서 서로 스쳐 가는 무리에서 오빠를 본적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외에는 바람결만 지나갔다. 어머니는 기력을 잃으셨고 오빠를 잊지 못하셨다. 우리집에는 의사가 왕진을 자주 오셨다. 어머니는 가슴에 한이 되신 것이다. 어느날 나를 부르시더니 두둠한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태워 없애라, 보시 싫다.” 하셨다. 뒤뜰에 와서 몰래 열어보니 큰오빠사진이었다. 어머니가 오빠를 떠나 보내신 것이다. 오빠는 키가 크고 잘 생기셨다. 어머니 앞에서 태워 없앴다고 말씀드리고 깊숙이 감추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오빠를 기다려 보려고, 작은오빠가 결혼을 하고 내가 교직 발령을 받고 1년 뒤에, 59세의 연세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6, 25 전쟁 후 14년이 되던 해이다. 5남매가 미성이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생하시고 가슴에 한을 가지고 계시면서 내 결혼까지 걱정하시면서 남겨놓은 무명저고리 한 감. 어머니는 외출하실 때 무명저고리와 베이지색 유똥(실크)치마를 입고 문상을 가고 제사를 지내셨다. 올케언니에게도 무명저고리를 권하시고 내게도 무명저고리 옷감을 남기셨다. 관혼상제의 예절을 가르친 것이다.

44년 동안 장롱속에 고이 간직 되어 있다. 가위로 잘라내고 옷을 해 입기에는 어머니의 그 인고의 세월에 가위질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오래 동안 그 용도를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매화만 그리는 동양화가를 찾아갔더니만 바탕이 너무 희어서 그릴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분은 베이지 바탕 천에 흰 매화 그림을 그렸다. 무명과 모시에 그림을 그려줄 화가를 찾을 것이며 어머니를 대신해 오빠를 기다릴 것이다. 이제 내게도 제법 큰 손자가 슬하에 있다. 아들대에서 끝이 나려나 기대했든 바램은 뒤로 물러나고 손자가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할 이 세월은 언제 끝이 나려나? 얼마나 많은 가슴들이 썩어 문드러져야 이 세월이 끝이 날까! 어머니가 남겨 놓으신 이 사진은 누구에게 물려 주어야 하나?

어머니가 그리우면 달과 함께 인고의 세월을 보내신 중천의 달빛이 떠오른다. 오늘밤도 달빛이 밝다.

2012년 10월 [루나글로벌스타]

류송자 수필가

* 1944년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11년, 문학미디어 봄호를 통해 수필로 등단한 이후 꾸준한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다.

* 루나글로벌스타는 수필가 '류송자'님의 수필을 2017년 5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류송자  press@lunarglobalst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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